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Sticky Fingers (문단 편집) == 녹음 배경 == [[비틀즈]], [[비치 보이스]] 같이 60년대를 씹어먹던 밴드들이 은퇴를 하게 되었고, 아직 남아있던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이 새로운 시대인 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[[레드 제플린]]과 [[핑크 플로이드]] 같은 후배 밴드들에 대한 응답으로 새로운 앨범을 제작하게 되었다. 이 앨범들이 바로 1971년에 나온 본작과 [[더 후]]의 [[Who's Next]]이다. 당시 대중음악계는 레드 제플린의 대 히트로 인해 하드하고 연주가 화려한 음악이 유행이었다. 레드 제플린이 몰고 온 하드 록, 헤비 메탈 열풍에 따라 두 앨범 다 더 하드해지고 화려해진 음악을 원하는 대중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으며, 실제로 롤링 스톤스의 앨범중 가장 하드 록스러운 앨범으로 평가받는다.[* 실제로 두 앨범 모두 수록곡 중에서 화려한 기타 솔로가 포함된 수록곡들이 존재한다. 참고로 롤링 스톤스와 더 후는 화려한 연주보다는 그루브를 지향하던 밴드였다.] 당시 언론들은 은퇴한 [[비틀즈]]를 뒤로하고 그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롤링 스톤스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었는데, 그때 그런 화해의 제스처가 소용이 없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. 바로 [[히피]] 문화의 끝물이던 1969년에 발생한 [[알타몬트 공연]] 사건과 래드랜즈 별장 사건이다.[* 근데 이 두 사건이 롤링 스톤스를 매장하려던 언론에 의해서 부풀려진 사건이라는 말도 존재하긴 하다. 특히 후자는 확실하게 루머로 밝혀졌고 전자는 롤링 스톤스의 책임이 어디까지였는지 아직도 논쟁중이다. 그 당시 같이 공연하던 [[제퍼슨 에어플레인]]과 같이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고 롤링 스톤스의 책임이 100퍼센트라는 주장도 있으며, 롤링 스톤스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. 이 두 사건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은 영어 위키를 참고해보자.] 당시 롤링 스톤스는 알타몬트 공연에서 전문 경호 업체가 아닌 [[헬스 엔젤스]] 갱단을 고용했고, 결국 공연에서 난동이 일어나 헬스 엔젤스 갱단에게 관객 한 명이 살해당했던 것이다. 이 사건으로 롤링 스톤스는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으며, 이와 더불어 [[앨런 클라인]]과의 저작권 분쟁 또한 있었다.[* [[비틀즈]] 팬들에게 천하의 개쌍놈 취급받는 그 사람 맞다.] 당시 멤버들은 앨런 클라인과 더불어 계약하고 있던 데카 레코드와 재계약하기 싫어했다. 이 때문에 마지막으로 ‘Schoolboy Blues’를 매우 조잡하게 만들고 밴드의 독자적인 레코드사인 ‘롤링 스톤스’를 만들어 데카 레코드를 떠나게 된다. 즉 이 노래는 롤링 스톤스 레코드에서 발매된 첫 번째 앨범이었던 것이다.[* 그래서 실제로 이 앨범 이전에 나온 앨범의 곡들은 앨런 클라인의 회사 소유 지분이 크며, 유튜브에도 롤링 스톤스의 계정이 아닌 앨런 클라인 회사의 계정으로 자막 영상이 업로드된다.] 한편 멤버들은 앨범 작업을 하면서 로고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된다. 그렇기에 디자이너인 ‘존 파시’가 로고를 디자인 해주었는데, [[힌두교]]의 신인 [[칼리]]의 입술과 혀를 따왔다. 따라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롤링 스톤스의 입술 로고는 이 앨범부터 쓰이기 시작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